연애시대_운명일지 모르지만 사랑은 아니다.

기억글 2016. 4. 1. 02:50

 

 

 

 

예전 회사 동료가 내게 적극 추천했던 드라마가 있다. 노자와 히사시라는 작가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연애시대인데 가히 클레멘타인에 버금가는 최고의 평점과 하나같이 칭찬 일색인 후기만이 있는 것을 보니 꽤나 인기있던 것은 분명하지만 방영했을 당시엔 티비를 보지 않았기에 모르고 지나간 것이다.

이 드라마엔 감우성과(추천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인 듯;;) 손예진이 이별한 부부로 나오며 그들과 그 주변인물의 이야기로 전체 이야기가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주변인물로 나오는 산부인과의사와 손예진 여동생의 캐미가 훨씬 보기 좋았다고 해야 할까? 보는 내내 이런 친구, 혹은 이런 여동생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나 했던 것 같다.

 

아무튼, 추천을 받고도 한동안 잊었던 이유도 있지만, 당시의 내겐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보는 것이 조금은 힘든 시기었기에 굉장히 오랜만에 본 드라마이기도 하다. 어쨌든 시작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시작하니 주말을 이용해 의외로 단시간에 정주행을 끝내게 되었는데 내가 느낀 이 드라마의 장점이라면 거의 10년이 지났음에도 꽤 신경쓴듯한 연출과 음악, 그리고 마치 ‘그남자,그여자‘ 에서의 신호등과 같이 암시를 주는 소품들과 미장센이 드라마 전반에 잘 배열되어 소소한 재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겐 위에 언급한 장점들을 모두 무의미하게 만들만큼의 거부감도 있었는데 그것은 잘 포장되었지만 이해할 수는 없는 동진의 사랑과 모든건 운명이니 괜찮다는 식의 결론이었다.

사실 그 거부감은 드라마의 처음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혼했음에도 매년 결혼기념일에 호텔에서 보내주는 디너할인권을 이유로 함께 저녁을 먹을 만큼 은호와 동진은 편한 사이로 그려졌고, 굳이 그런 핑계없이도 종종 술자리를 하는 모습은 드라마를 가볍게 즐기기에 딱 좋은 정도의 무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중반부로 가면서 사뭇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이별의 이유와 아이의 유산, 그리고 유산 당일 동진의 진실을 보여주었데 유산 직후 힘겨워하는 아내를 남겨둔채 회사에 갔지만 사실은 죽은 아이의 곁에서 밤을 보냈다는 반전어린 진실은 나로선 공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아이를 잃은 동진의 상실감을 쉽게 얘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순간 가장 힘들고 아파할 사람은 은호이기에 동진이 있어야 할 곳 역시 죽은 아이보다는 은호여야만 했다. 어쩌면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가 더 중요한거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극중의 관점으로만 보더라도 이후 동진은 아이의 무덤을 아무렇지 않게 깔고 앉아 자신을 나무라는 은호에게 이렇게 얘기하지 않는가.

"죽은놈이 뭘 알아."라고.

 

 

그리고 동진이 이혼을 결심한 이유 역시도 납득할 수 없는데, 이혼 후 여행지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은호의 말에 동진은 대답 대신 아이를 잃고 얼마 후 은호를 안았을 때의(남녀관계) 이야기를 한다. 그때 서럽게 우는 은호의 모습을 보고 함께 있으면 계속 아프겠다 느꼈고 계속 아파할테니 헤어지는게 좋겠다 생각했다고, 그리곤 은호에게 묻는다. 행복하자고 결혼했는데 그럴수는 없지 않냐고, 다시 시작하면 힘들어 질텐데 울지않을 자신 있냐고.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상처입고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아이를 잃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떠나야겠다 생각하는 것은 사랑일까?

만약 은호가 스스로의 불안한 모습에 이별을 결심했다면 아주 조금은 동의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진은 헤어짐의 이유와는 달리 은호의 주위를 계속 맴돌며 자신은 은호의 가장 친한 친구와 공개연애도 하고 은호의 연애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다 동진은 첫사랑을 만나면서 더 이상 은호의 곁을 맴돌지 않는데 결국 자신의 첫사랑과 결혼을 함에도 어느날 은호가 사라졌다는 한마디엔 무작정 열차를 타고 은호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그 모든것이 은호 여동생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은호를 만나선 너 없이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한다.
이에 은호가 "확신도 없이 다른 이를(동진의 부인) 불행하게 만들면 안된다."라고 하자 동진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데 확실한게 어디있냐."라고.

결국 동진에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동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 그때의 감정이며 자신의 행복이다. 그렇기에 쉽게 이별을 하고, 쉽게 사랑을 하고, 또 결혼을 했음에도 다시 함께하자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를 '평생을 두고 사과하겠다' 라는 한마디로 정리한 채.

 

결국 그렇게 드라마는 동진과 은호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헤어지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돌고 돌았음에도 결국 모든것이 사랑이고 운명이라는 거다.
삐딱한 나의 시선과는 달리 가히 압도적으로 이 드라마가 좋은 평가만을 받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운명을 믿고 싶어하고 나 역시도 그러하니까. 게다가 손예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동진의 사랑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앞으로 사랑하게 된다면, 진심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이유로, 이별부터 생각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한다면 그렇게 쉽게 도망가면 안된다. 힘들고 아파한다면 곁에 있어줘야 하고, 눈물을 흘린다면 안아주어야 한다. 주위를 맴돌만큼 신경쓰인다면 솔직해야 하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에 함께하자 대답해야 한다. 다른 사랑을 해서도 안되며 다른이와 결혼해서도 안된다. 우리의 삶은 소설도 드라마도 아니기에 극중 동진의 말처럼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는,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 말로 모든것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라는건 우연히라도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월하노인이나 운명의 빨간 실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다.

월하노인과 운명의 실이란 바로 우리의 마음이며, 우리의 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그 마음을, 꼭 잡은 그 손을, 우리는 절대 쉽게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약 실수로라도 놓쳤다면 더 늦기전에 용기내야 하고. 더 늦기전에 말해야만 한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서툴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 부족하기에 아프고,
 어느새 많은 것들을 잃는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 되더라도 아직은 늦지 않았을지 모르기에 우리는 용기내어 손을 내밀고 말해야만 하는 것이다.

 

'너 없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아마도 드라마와는 달리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테지만

여전히 많은 이별을 겪고 또 그만큼 아플테지만

그래도 사랑한다면

절대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직은 늦지 않았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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