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04

일기 2012. 12. 5. 19:16

 

새벽 밤길을 나서 무작정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늦은 새벽, 하지만 이른 새벽이라고도 불리는 시간이라 일과를 마친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시끌벅적 주점에서 나와 각자 안내되는 차를 나눠탄다. 거리를 두고 지나치는데 왠지 화장품 냄새가 난것도 같다.

 

그렇게 이쪽 저쪽을 방향없이 걷다보니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조명들을 몇번이고 지나친다. 가는길이 멀어 귀찮게만 느껴졌던 예전과 갈곳이 없어 빙글빙글 돌고만 있는 지금. 어느쪽이 더 괴로운 것일까도 생각한다. 그렇게 목적지도 없이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다보니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신경쓰지 않았던 것들이 신경쓰인다. 난 지금 얼마나 할일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내 차림은. 내 표정은. 내 발걸음은 얼마나 초라한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싫어 안이 훤이 보이는 작은 실내포차로 들어간다. 마무리 청소를 하고있었는지 반가운 눈치는 아니지만 모르는체 소주와 꼼장어를 시키곤 작은 티비로 시선을 돌린다. 민폐인걸까. 호들갑스러운 북한 미사일 소식을 들으며 소주잔을 기울인다. 정세가 어쩌고 미국의 반응이 어쩌고. 어느새 주인아저씨는 내 앞에 안주를 놓곤 부리나케 막걸리 한병을 사온다. 혼자서 한잔. 아주머니와도 한잔. 바로 앞 곰탕집 사장이 술병이 나서 약올리러 갔었던 얘기, 동창들과의 여행계획 얘기가 들뜬채 들려온다. 그 동안에도 티비는 여전히 사정거리가 어쩌고 미국 서부연안이 어쩌고.. 어느 새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나는 마지막 잔을 따라놓곤 밖을 바라본다. 아픈걸까.

 

마지막 잔을 비우고 주섬주섬 계산을 하고 나온다. 귓볼은 뜨겁고 바람은 차다. 이내 허리가 굽어지고 발걸음이 짧아진다. 머리카락과 귀 사이로 찬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춥다. 짧은 혼잣말에도 입김이 나온다. 손을 주머니에 넣으니 걸음이 빨라진다. 이젠 갈 곳이 생긴 것이다. 발걸음 만큼이나 숨도 거칠지만 왠지 조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갈 곳이 있어 다행이야.

 

입김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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