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이야기 2008. 8. 23. 23:29

 

 


주문이 밀려 정신없이 닭을 포장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손가락 끝으로 들어보니 파란색 액정에 ‘엄마’라고 쓰여 있다. 분명 또 술 생각이 나셔서 전화 하셨겠지, 잠시 받을까 망설이는 사이 “아가씨 여기요!”라며 테이블에서 빈 맥주잔을 들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울리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생맥주 한잔을 따르기 시작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달라진다. 그건 마치 일종의 가면놀이 같다. 때론 유쾌하고 때로는 잔인한...

돌아가신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이었다. 그래서 오빠는 아버지얘기를 할 때면 항상 욕지거리부터 내뱉었다. 나는 늘 그 욕지거리가 듣기 싫었지만 나 역시도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슴속에 또아리 틀고있는 격한 감정이 머리를 쳐들곤 하는 것이다.
개새끼-

중학교 3학년 겨울 어느 늦은 밤이었다.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술이 만취해 들어왔고 잠들어 있는 엄마와 나를 번갈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처럼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린 채 맞고 있었는데, 평소 같으면 진작 끝났을 아버지의 구타는 온갖 욕설과 함께 계속되었다. 결국엔 참다못한 엄마가 “제발 이제 그만 좀 하세요!”라고 소리 지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나를 내버려두곤 어머니만을 거세게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서럽게 울면서도 그런 아버지를 말리지는 못했는데, 어쩌면 속으론 맞는 쪽은 내가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이런 씨발! 이게 뭐하는 짓 이예요!!” 라고 소리치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의 목소리,
나보다 3살 많은 오빠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평소엔 동틀 새벽에야 들어오던 오빠가 그날은 웬일인지 나타나 아버지의 팔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와 어머니가 놀란 눈으로 지켜보는 사이 오빠는 아버지를 거세게 넘어뜨렸고 그 갑작스런 상황에 우리 가족은 잠깐 동안 멍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비틀비틀 일어난 아버지는 현관 쪽에 피워놓은 석유곤로를 우리 쪽으로 집어 던졌고, 쓰러진 석유곤로의 불은 바닥의 헝클어진 이불에 붙어 우리가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삽시간에 번졌다.
다행히 급히 달려온 동네사람들 덕분에 큰 화재로 번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놀라서 벌벌 떨고만 있던 나를 끝까지 부둥켜안고 있던 엄마는 그날의 일로 머리와 팔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나는 다음날도 그리고 또 다음날도 엉엉 울기만 했을 뿐 엄마에게 단 한번도 말하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지금까지도 엄마가 집밖으로 멀리 나가지 못하시는 건 흉터 때문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뿐이었다.


전화벨이 또 울렸다. 역시나 엄마다. 엄마는 오빠와 함께 살았지만, 오빠가 2년 전 사업을 한다며 빚만 져놓고 지방으로 도망간 이후 혼자 사셨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씩 하시던 전화는 요즘들어 부쩍 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신 엄마는 심근경색판정을 받았고 나는 그런 엄마의 병원비과 오빠의 빚을 갚기 위해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했다. 편의점 파트타임으로 시작한 일과는 조그만 회사의 경리 일을 거처 새벽의 치킨 집에서 끝났고, 차비를 아끼고 최소한의 잠을 자기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고시원에서 생활한지도 3년이 지난 것이다.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갈 곳은 없었다. 그런 여유로운 생각조차 허락되지 않은 생활이었으니까. 일주일에 한번 수요일, 저녁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 엄마를 찾아가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집 근처의 슈퍼에 들려 엄마가 일주일동안 먹은 식료품값을 계산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숨 돌림이었다.

“소연이 듣고 있니?”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분명 술 얘기를 할 것이 뻔했다. 지난달에 더 이상은 숨기기 힘들었는지, 엄마가 그동안 나 몰래 술을 계속 가져갔다는 사실을 슈퍼아주머니가 말했다. 물건 품목에는 라면이나 반찬으로 적어놓았던 것들이 전부 술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불같이 화를 냈고 슈퍼아주머니도, 어머니도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어찌되었든 슈퍼아주머니는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얼마 전부터 계속 술 얘기를 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으니까.

“듣고 있는 거야?”  힘없는 엄마의 목소리.

“빨리 말해, 바빠.”

“소연아, 엄마가 좀 아픈 것 같아. 그런데..... 엄마가 소연이랑 삼겹살에 소주 한잔 먹으면 괜찮아 질 것 같거든....”

“아 진짜-! 엄마 미쳤어?!”
소리를 빽 질렀다. 손님들이 하나 둘 쳐다본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

“미안해 엄마는 그냥....”

사람들의 시선에 듣는 둥 마는 둥 가게 뒷문으로 나갔다.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가 보인다.

“나 오늘 일하는 날인 거 알잖아, 오늘 월요일이니까 모레 갈게, 됐지? 바쁘니까 끊어!”

전화를 끊고 나니 찬바람이 느껴진다. 그리고 쓰레기 냄새,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쓰레기들이 말한다.

..외롭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고, 가게 안쪽에선 와- 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순간 가슴이 아려오며 뭔가 뜨거운 것이 쓸고 지나간다. 어릴 적 아이들에게 거지라고 놀림 받고서 혼자 울고 있을 때 엄마가 사다줬던 곰보빵도 불쑥 생각났다. 왜 그게 갑자기 생각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때도 부슬부슬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시간 어디서 구해왔는지 엄마가 건네는 곰보빵 봉지위로 부슬부슬한 빗방울이 묻어 있었다. 비 내리는 처마 안에서 곰보빵을 먹으며 다시는 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린 내 머리를 쓰다듬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앞치마를 한번 털고 가게로 들어갔다.
밖에는 어느새 빗방울이 무거워지고 있다. 포장하던 닭들을 마저 포장하는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하하하하-.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즐거워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서로 꼭 붙어서 속삭인다.
화장실에서 비틀거리며 나오는 여자가 보였다. 예쁘게 차려입은 내 또래의 여자, 일행인 듯한 남자가 달려가 부축하는데 그녀의 화장기 진한 눈이 나와 마주친다.

..외로워.

주머니의 전화기를 꺼내서 천천히 열었다.
긴 숨을 한번 들이쉬었다. 그리고 전화기를 바라본다. 나는 두 번째의 긴 숨을 들이쉬고나서, 결국엔 전화기를 닫았다.
어디에도 연락할 사람은 없다.
단 한사람, 나의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만 연락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차피 또 짜증만 낼 테니까.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깜빡깜빡. 금세라도 끊어질 듯이 깜빡이는 화면에 쓰여 있다. '엄마.'

역시나 짜증스런 목소리로 받았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누그러트린 목소리다.

“엄마 왜? 나 바쁘다니까..”

수화기 너머 숨소리가 들린다. 쌕-쌕-

“엄마?”

“응- 소연아 자꾸 전화해서 미안해, 엄마가 왜 했냐면.....”

 




나는 멍하니, 걸려있는 엄마의 사진을 본다.
천천히 올라오는 하얀 향 연기가 엄마의 얼굴을 가린다. 변변한 사진조차 없어 어딘가에서 오려낸 사진이다. 나와 닮은 얼굴...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서있는지 앉아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어쩌면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건 꿈일 것이다. 새벽에 눈을 떠 대충 씻고 나가야 한다. 편의점까지 달려가 물건 정리와 청소를 하며 교대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3시간의 파트타임 근무가 끝나고 교대를 하면 유통기한이 다된 삼각김밥을 먹으며 회사로 또 달려갈 것이다. 이제 곧 말일이라 바빠진다. 저녁의 호프집 아르바이트 시간을 어기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바쁘게 빈틈없이 해두어야만 한다. 쌓여있는 장부들, 회계프로그램에 채 입력하지 못한 자료들. 외롭다거나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사치다. 정말 외롭고, 정말 힘들면,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렇고 또 그래야만 한다. 살아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아있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가셔서 어떡하니... 많이 힘들지?.”

상복을 입은 나의 손을 잡으며 한 아주머니가 말한다. 얼굴은 익숙한데 누군지 딱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몽롱하고 흐릿하다. 하긴 꿈이니까... 꿈이니까 몽롱하고, 꿈이니까 기억이 나질 않는 거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그동안 그렇게 술을 주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말하는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고서 울고 있다. 아.. 슈퍼 아주머니... 나는 이내 생긋 웃어보인다.

“아주머니, 울지 마세요. 그럴 수도 있죠 뭐, 이제부터 안 주시면 되잖아요. 예?”

내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오열했다.

“내가 죽일 년이야, 소연아 날 죽여라, 니 엄마가 우리 딸 고생한다고, 자기 때문에 고생한다고, 술이라도 안 먹으면 잘 수가 없다고 맨날 쌀사고 반찬살 돈으로 술 가져가는 거 내가 그냥 그러라고 했었다.... 미안해 소연아...응. 미안해....”

멍한 내 얼굴을 더 이상은 보기 힘들었는지 아주머니는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기 시작했다.

“그날 아침에도 니 엄마가... 니 엄마가... 우리 딸 고생하는데 자기만 배부르게 있으면 안 된다고.... 자기만 그럴 수는 없다고.... 내일이면 우리 이쁜딸 온다면서 달랑 라면 하나만 가져갔어....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착한 자기딸 오니까 자기는 하루에 라면 하나면 된다고.... 매일을 그렇게 제일 싼 라면 하나만....“

이 아주머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자꾸만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멈출 수가 없다. 쿵쾅쿵쾅.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아파온다.
어느새 창밖의 빗방울이 거세지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곤두박질친다. 하늘에서 바닥으로.

그때 알았다.
나는 어제 처음으로 회사를 조퇴하고 엄마를 만나기 위해 갔었다. 수요일. 원래 가는 날이지만 낮에 찾아 간적은 없었다. 저녁에 먹을 삼겹살과 곰보빵을 사들고, 소주대신 흰 우유를 사들고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엄마를 만나러 간 것이다. 나는 엄마를 만나서 곰보빵을 먹는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 엄마 화상은 나 때문이라고, 미안하고, 또 고맙다고. 그 당시에도, 그 다음날에도, 그렇게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힘들어도 같이 살자는 말도...
갑자기 가슴이 아파왔다. 아프다는 것은 표현만이 아니다. 정말로 가슴이 갈갈히 찢어지고 정말로 못을 박는 듯한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결국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엄마를 위해 그 어떤 말도 해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느껴지는 고통이다. 이 고통은 그런 것이다.


그날 방문을 열었을 때 어머니는 옷을 곱게 차려입고 누워 계셨다. 조그만 통장과 빈 약통마저 머리맡에 가지런히 두시고는 그렇게 누워 계셨다. 약이 있었다면 사셨을 거라는 말에도 나는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어머니는 약을 살 돈조차 아끼셨고, 약이 떨어졌다는 말조차 내게 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런 엄마는, 그곳에서 외로운 모습으로 혼자 쓸쓸히 누워계셨다.

그랬다, 엄마는 외로웠던 것이다. 엄마는 오랜 시간동안 어두운 방에서 전기도 켜지 않으시고 사셨던 것이다. 혼자서 일어나 잠자리를 정리하고, 혼자서 집 앞의 슈퍼에 나가서 라면 한 봉지를 사셨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식사를 하시고, 가끔은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과 사람들을 바라봤을 것이다. 해가 질 때쯤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해가지면 이부자리를 펴고 쓸쓸히 혼자 누워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 동안의 용기를 모아서 내게 전화했던 것이다.
나는 왜 이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일까.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엄마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한껏 짜증만 내고 툴툴거렸던 내게 했던 엄마의 마지막 말.
불쌍하고 또 외로웠던 우리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했던 말.

“소연아 자꾸 전화해서 미안해, 엄마가 왜 했냐면... 우리 딸 이름이 너무 부르고 싶어서...
우리 이쁜 딸 소연이 이름이 너무 부르고 싶어서... 삼겹살 안 먹어도 좋고, 소주 안 먹어도 좋으니까 우리 이쁜 딸 소연이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서 했어.... 우리 소연이 많이 힘들지?...”


떨어지는 빗방울이 온 몸을 두드린다. 그 뜨거운 빗방울은 내 볼을타고 가슴으로 흐른다.
흐르는 빗방울에 가슴이 베이고 심장이 찢어진다. 아프게.. 아프게...
더이상 견디기 힘든 고통에 주저앉을 무렵
희미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소연아 사랑해.”


엄마의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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