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들

기억글 2010. 6. 9.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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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사용하던 오디오가 고장났다. AS받고 얼마 안 지났는데 CD를 들으려 하니 또 말썽을 부린 것이다. 마침 오래전에 선물 받았던 CD플레이어가 생각나 서랍을 뒤졌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창 유행하던 작고 예쁜 MP3플레이어를 목에 걸고 다니며 내팽겨 둔지가 벌써 몇 년이나 흘렀으니 주인으로서 할 말도 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막상 필요해 한참을 찾아도 나오질 않으니 영영 내손을 떠난 것이 실감나 아쉬움이 남는다. 사라져서 아깝다거나 딱히 곤란하다기 보다는 “아, 또 무언가 내 곁을 떠났구나.”라며 상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약간 무거운 얘기를 하자면, 세상의 인연들 역시도 사라진 CD플레이어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 내 곁에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계기를 통해 만나고 또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계기로 인해 헤어지게 된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아무리 사랑하거나 두 손에 꼭 움켜쥐고 있는 것이라 해도 이 세상에서 헤어지지 않는 인연은 없다는 것이다. 내 초등학교때 첫사랑과도 “안녕 우리 나중에 만나.”라고서 헤어졌고, 중학교 때 무섭게 야단치곤 불러서 안아주시던 국어선생님과도 헤어졌으며, 소중하게 사용하던 CD플레이어를 나에게 선물해준 아이와도 헤어졌고, 졸업하면 꼭 연락하고 지내자던 녀석들 역시 깨끗이 헤어져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헤어진 것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어느 장소에서도 다시 만나지 못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전혀 모른다. 그네들이 차원이동을 하거나 자연속의 은둔 같은 걸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렇게나 많은 이들이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은 나의 성품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헤어짐을 겪는 것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필수코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캐스트어웨이의 톰 행크스처럼 무인도에서 혼자 산다고 해도 결국엔 윌슨과 헤어져야 하니 말이다.

그럼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사랑하던 결국 헤어지게 될 테니 사랑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라고 묻는다면 결코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헤어지게 되면 상대방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생각하고 심지어 주위의 누군가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는 깊은 슬픔과 절망,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단언컨대 현실에서 볼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이 어디론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년의 나라면 조금은 망설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분명히 단언할 수 있다. 만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인생론’에서 죽음이 모든 사람과 영원히 헤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한 추억이 정신적인 힘을 발휘하여 더욱 강력한 유대관계를 만든다고 했다. 이미 말했듯 나는 지금껏 사랑했던 많은 것들과 이별했고 그들 대부분은 다시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지만 톨스토이의 말처럼 그들은 내 추억 속에 분명 살아 있으면서 여전히 나와 강력한 유대관계를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잃어버린 CD플레이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런 회한에 젖으니 말이다.

-그 CD플레이어는 조그만 분홍색 쇼핑백에 담겨 있었어, 그때는 비가 왔었고, 그 아이는 쓰던 것을 주게 되어 미안하다고 했었지. 그리곤 참 열심히 음악을 들었는데, 학교에 갈 때도, 눈이 오는 창밖을 바라보면서도 음악을 듣고, 그 아이와 늦은 통화를 끝내고 잠이 들려 할 때도, 함께 여행을 가던 열차에서도, 그 아이와 헤어진 후에도 CD플레이어는 한참이나 내 곁에 있었는데-

이렇듯 사람이 아닌 단순한 CD플레이어라 해도 거기에는 단지 은색의 소니 제품이라는 것 말고도 그것에만 존재하는 기억 속 특별한 영역이 존재한다. 물론 얼마 후면 고장난 오디오를 고치고 그것으로 들으려던 CD를 듣겠지만 깨끗하게 고친 오디오로 음악을 듣다가도 어느 순간 예전에 듣던 음악을 들으면 사라진 CD플레이어와 공유했던, 그리고 그것이 연결해 주는 누군가와의 기억, 그 시간의 질감과 그때 그 공기의 가슬가슬함을 나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맞아, 이 음악을 들을 때쯤 우린 헤어졌구나..”라고.

이렇듯 추억이란 문득 창밖을 바라보거나, 낡은 서랍을 열거나, 침대에 멍하니 누워 있을 때 마음 속 한켠을 아련하게 만들기도 하고 무심결에 다리를 떨고 있거나 밥에 든 콩을 골라내고 있으면 누군가의 목소리로“안돼!”라고 소리치기도 하며 오백 원짜리 동전만 보면 쓰지 못하고 차곡차곡 모으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적당한 예시였는지는 몰라도 어찌되었건 우리가 헤어지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채 헤어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무언가라도 이렇듯 가슴속에 남아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발휘하는 것이 추억인 셈이며 그것이야말로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결코 떠나지 않았다는 반증이자, 그들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무엇보다도 가장 확실한 존재방식이다.
이것을 하루키 식으로 표현하면 우리 몸속에 있는 기억을 한 장 한 장 꺼내어 불을 지피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추억인 것이다.

이쯤 얘기하고서 “그래서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거나 “그러니까 힘내세요.”라며 밝은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면 사뭇 ‘참 잘 했어요.’ 라는 별 다섯 개 도장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언젠가 내 곁의 것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되면 그들 모두가 어떤 추억이 되거나, 하루키식의 표현대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무엇이 되는건 아닐 것이다. 지금 내 곁에도 불쑥 전화를 하면 “그래, 그럼 어디서 만날까?”라며 흔쾌히 나타날 사람이 있고 그러한 이들이 영원히 내 곁에 존재하며 지금처럼 나의 손이 닿는 곳에서 언제든 함께 차를 마실 것 같이 느껴지지만 그들 중 일부는 추억이 되고, 일부는 아쉬움이 될 것이며, 일부는 깨끗이 사라져 잊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릴 적 친구들의 이름을 전부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고, 초등학교때 부터 소중히 간직하던 손수건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헤어지는지가 소중하며
어떻게 사랑하는지가 더욱 소중하다.'

시간이 흐르고, 떠나보내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 가면 가슴속의 쓸쓸함과 상실감도 커져갈 것이다. 물론 그네들이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닌 채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이별의 숫자만큼 또 다른 만남이 있겠지만, 내게 헤어짐이란 여전히 힘든 일이며 여전히 서글프고 또 여전히 아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문득 쓸쓸해지는 날이면 낡은 책장에서 책을 꺼내듯 가슴 깊은 곳의 추억을 조심스레 꺼내 천천히 먼지를 닦아 읽어 내리고는 이렇게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

“조금만 더 사랑하자.
어느새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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